지속가능한섬 기획칼럼 3탄 _ 완성해야 할 섬의 연대기

2015년 12월 14일 | 성명서/보도자료

인천섬연구모임과 인천일보 공동기획
지속가능한 섬이야기 3탄  12월 14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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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해야 할 섬의 연대기

▲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걸어서 갈 수 있다면 섬이 아니다. 뒷산 호젓한 오솔길을 소요하듯이, 싸리나무 울타리 너머 옆집 사랑에 마실가듯이, 찾아가고 싶을 때 훌쩍 가 닿을 수 있고 방해 따위 아랑곳없이 쉽게 돌아와 뭍에 이를 수 있다면, 그건 섬이 아니다.

섬을 오가는 길은 불편하다. 사방이 열려 있어도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바람은 가늠하기 어렵고 해무는 서서히 밀려 들어와 끈질기게 떠나지 않는다. 파도 위의 하얀 포말이 바다를 덮으면 그날은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큰 다리를 놓지 않는 한 바다를 이길 수는 없다. 연륙교는 육지와 섬을 잇는다. 두 발로 걷거나 자동차로 질주해 들어갈 수 있을 때 섬의 운명은 뒤틀리기 일쑤다. 바다를 극복하겠다고 선택한 연륙교가 섬을 위해서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절’이나 ‘고립’을 섬의 운명이라고 나 몰라라 하기도 어렵다. 아름다운 풍광, 청정한 공기, 신선한 해산물, 보기 좋고 놀기 좋고 먹기 좋은 것들만 칭송하자니 마음은 영 편치 않다. 육지와의 단절은 뭍사람들에겐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 몰라도 섬사람들에겐 해결해야할 ‘숙원’ 사업이다. ‘단절’을 어떻게 슬기롭게 잇게 하고 어떤 묘수를 써서 ‘고립’을 운이 아닌 기회로 만들어 가느냐 하는 일이 지금 섬을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다.

고민을 해결하는 출발점은 직간접적인 답사가 되어야 한다. 160여 개가 넘는 인천의 섬을 펼쳐 놓고 하나하나 짚어서 정리하는 한편, 구석구석을 도두밟으며 숨어 있던 모습을 만나러 가야 한다. 섬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쾌속선을 타고 몇 번 오가는 수고를 했다고 섬을 알 수는 없다.

크기로 봐서는 육지의 한 개 행정동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은 섬도 있지만 측정하기 힘든 세월이 거기에 담겼고, 수천수만 명의 흔적이 그 위에 쌓였다. 작은 돌멩이에서 큰 산까지, 홀로 낚시를 하던 어부부터 무역선의 선장까지, 섬에 있었고 섬을 지나쳤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나의 상자에 모아 담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인천 섬 데이터베이스’가 섬의 가치를 알아 가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섬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섬의 연표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연대기가 없다는 건 인천에서 섬이 주인 노릇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관광의 대상은 될지언정 섬이 ‘무엇’이 돼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섬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선 뭍을 밀어내고 섬이 주체의 자리로 올라서는 공간의 전복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선 섬에서 육지를 바라봐야 한다. 섬은 공존의 공간이었다. 한반도 북부를 따라가는 연안항로, 산동반도로 가로질러 들어가는 횡단항로, 한반도 남부를 출발해 동북아시아를 넘나들던 사단항로 등은 이미 고대부터 황해의 섬이 교류와 소통의 공간이었음을 입증해 준다. 이러한 사정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더구나 인천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이나 중국과 가장 가까운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인천에 딸린 공간이 아니라 황해의 중심에서 인천과 관계를 맺는 장소로 바라봄과 동시에 뜻하지 않게 주어진 이러한 호조건을 십분 활용, 황해의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할 의무가 인천에 있다. 인천의 섬들이 가진 무게가 이러한데 성급히 다가가 ‘시혜’를 베풀 듯 육지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한두 개 뿌려 놓는 일은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시도다.

또한, 북한과의 접경지대를 보유한 인천은 다른 지역보다 앞서 북한전문가들을 양산해 내야 한다. 군사 전문가만이 아니라 역사를 연구하고, 관광을 고민하고, 이야기를 채집하고, 생태를 추적할 수 있는 연구자들을 키워내며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접경지역 너머의 섬들을 포함해 북한 땅의 자원들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앞날을 대비함이 또한 인천이 추구해 가야 할 길이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섬의 역사와 이야기는 여전히 쌓여 있다.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