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낯익게 생물다양성 바라보기 4 – 물범과 더불어 산다는 것

2025년 6월 24일 | 멸종위기 야생생물, 생태계보전, 섬•해양, 야생동식물, 점박이물범

우리 바다에 점박이물범이 삽니다

물범, 물개, 바다코끼리… 바다에 사는 네개의 지느러미 발을 가진 포유류를 우리는 기각류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 점박이물범은 우리 연안에서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기각류이며, 백령도 연안에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점박이물범은 생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생물종입니다. 그만큼 보호의 필요성이 큽니다.

먼저 점박이물범은 서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생태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최상위 포식자는 생존을 위해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기 때문에, 그들이 건강하다면 그들이 활동하는 넓은 지역의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점박이물범들이 건강히 잘 살고 있다면 서해 생태계도 건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점박이물범이 중요한 이유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이 귀엽고 털 달린 바다 생물을 좋아합니다. 이런 생물들을 카리스마 있다고도 표현합니다. 호랑이, 곰, 고래와 같이 점박이물범도 사람들을 휘어잡는 매력을 지닌 대형 동물(Charismatic megafauna)입니다. 

점박이물범에 대한 관심은 점박이물범 보호의 원동력이 되고, 다시 점박이물범이 서식하는 생태계 전체에 대한 보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황해의 점박이물범은 개체수가 급감해 좀 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1940년대 황해 전체에 약 8000마리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0마리 정도만 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점박이물범은 사람처럼 열달 남짓의 임신 기간을 거쳐 출산을 하며, 새끼를 한마리씩 낳습니다. 태어나면 30년 정도를 삽니다. 인간 등 대형 포유류들과 마찬가지로 새끼를 한꺼번에 많이 낳지 않고 성장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수가 한번 줄어들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위와 같은 특징 덕분에 점박이물범은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 인천광역시가 지정한 인천의 깃대종까지, 여러 당국에서 다양한 이유로 점박이물범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공표한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점박이물범을 보호해야할 당위는 충분하고 분명해 보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입니다. 녹색연합이 점박이물범 보호를 위해 지향한 방식은 ‘지역 사회가 중심이 되어서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앙 정부가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보전 정책을 수립해 이행하도록 하는 하향식 접근 보다는, 지역 사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 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적합한 보호 조치를 찾아내며 보호구역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녹색연합도 처음부터 이러한 접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점박이물범의 서식현황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녹색연합도 시민들과 함께 점박이물범을 조사하고 보호 방안을 공론화 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점박이물범 서식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보호관리하는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은 지역 사회의 반대에 부딪혔고, 이를 넘어서는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녹색연합이 시도한 것은 ‘생태관광’이었습니다. 점박이물범이 서식하는 지역이 공유하는 관광자원이 되고,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보호 활동을 하도록 지역 사회 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보자는 모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녹색연합은 ‘점박이물범 해양생태관광시범사업’을 추진했고, 먼저 주민들을 보호 활동의 주체로 양성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

점박이물범 생태해설사 프로그램을 이수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점사모)’이 만들어졌고, 점박이물범 생태학교에 참여했던 백령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지역주민 내에서 점박이물범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백령도에 8월 25일 점박이물범의 날이 제정되고 하늬바다의 물범바위 인근에 물범인공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2021년에는 하늬해변(점박이물범 집단서식지)과 진촌리 마을이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태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주민협의체(백령도점박이물범생태관광협의체)가 구성되어 활동중입니다. 그동안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가 함께한 점박이물범 보호활동이 지역사회에 기반한 지속가능성에서 크게 평가받았고, 지자체의 점박이물범 보호와 생태관광 추진 의지가 더해진 성과였습니다.

2019년 인천녹색연합의 특별기구로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이 꾸려졌습니다. 녹색연합에서 오랫동안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을 해온 활동가 1인이 백령도 내에 상주하며 이 사업단을 운영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역 주민이 되어 다른 주민들과 관계 맺고 지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녹색연합이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지만, 점박이물범을 보호하기 위한 지혜와 실천은 지역 사회로부터 나옵니다. 점박이물범이 돌을 튕겨서 접근해오는 사람을 쫓기도 하고, 언제 어떻게 털갈이를 하고 황해 북쪽 번식지로 이동하는지 주민들은 일상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점사모 회원을 중심으로 백령도 주민들이 점박이물범의 서식 현황을 7년째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작은 조각의 전통 지식과 시민과학 데이터를 오래도록 축적하여서 점박이물범과 공존하는 길을 지역 주민들이 모색하고 있습니다.

* <낯설게 낯익게 생물다양성 바라보기>는 인천녹색연합의 야생동식물 보호활동을 소개하고, 생물다양성의 개념을 정리,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글입니다. 2주 간격으로 총 15차례 연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