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도의 가치와 강원도의 미래

2016년 5월 16일 | 성명서/보도자료

제법 오래전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강원도의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나름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설악산과 낙산사 등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였던 점을 제외하곤 특별히 강원도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그냥 잠깐 놀려고 또는 쉬려고 들린 곳쯤으로 강원도를 설정한 것이라는 설명에 적지 않게 언짢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인천에 살지만 내 고향은 강원도다. 인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 때부터 강원도를 떠나 지금은 명절에만 강원도를 방문하는 처지지만 강원도 사람임에 틀림없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강원도 출신임을 이야기한다. 자연 이름도 나무꾼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는 왜 강원도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서울깍쟁이, 인천짠물이 아닌 감자바우가 좋다. 단지 정감 있는 표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봄이면 찔레를 꺾어먹었고, 여름이면 계곡 물에 멱을 감고, 가을이면 머루와 다래를 땄다. 겨울이면 참나무로 스키를 만들어 비탈 밭에서 스키를 탔고 토끼를 잡았다. 용돈벌이를 위해 토끼를 잡으면서 다음해 잡을 토끼가 없을까 걱정했다. 그 모든 추억들은 소양강과 홍천강이 시작되는 백두대간 춘천지맥 가마봉과 소뿔산 자락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것들이 그냥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예전엔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골짜기 골짜기마다 널찍한 찻길이 뚫렸고 펜션이 들어찼다. 살기 좋아졌다는데 마을마다 정겨운 웃음소리가 아닌 쓰레기가 넘쳐난다. 정감이 없어졌고 특색도 없고 어느 곳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마을들이 되어 가고 있다. 여우와 반달가슴곰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 흔했던 미꾸라지와 가재도 요샌 한참을 찾아야 한다.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울에서 서너 시간 족히 걸렸던 홍천이 지금은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용인과 안성 등 경기도의 골프장이 고속도로를 따라 홍천 등 강원도로 밀려들었다. 마을 뒷산 숲을 밀어버리면서 마을공동체는 공중분해 되었다. 단 3일짜리 올림픽경기를 위해 500년 보호림을 밀어버렸다. 이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국립공원이고 천연기념물이고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이고 백두대간보호지역인 설악산의 정상에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단다. ‘메뚜기떼’ 자본은 더 이상 먹이가 없으면 미련 없이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난다. 남는 것은 폐허뿐이다.

위정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잘’ 살기 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경제자유구역을 유치하고 올림픽을 유치하면 된다고. 중국인 관광객유치가 살 길이라고. 또 누군가는 호소한다. 남들처럼 좀 살아보겠다는데 왜 맨날 반대하냐고. 산양이 밥 먹여 주냐고. 하늘다람쥐가 사람보다 중요하냐고.

나는 묻는다. ‘잘’ 사는 것이 무어냐고. 지금의 계획들이 진정으로 강원도 사람들을 위한 것이냐고. 강원도의 가치가 무언지 아냐고. 그리고 위정자들에게 외친다, 강원도를 싸구려 취급하지 말라고. 자기 잇속을 위해 강원도 사람들을 팔지 말라고. 짧은 식견으로 50년 후 100년 후 강원도와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고.

/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 이 글은 춘천사람들(www.chunsa.kr) 제27호에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