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나누고 싶은 이야기_옛사람들의 더위 나는 법

2016년 6월 24일 | 초록세상

 
 
캡처
옛사람들의 더위 나는 법 | 유종반(생태교육센터 이랑 이사장)
 
 
옛사람들은 한여름에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라는 것보다는 더위를 잊고 즐기는 방법을 택한 것 같다. 한여름 더위는 피한다고 피할 수 없고 잊는다고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잊는 다는 것은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이다. 마치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양 마음을 다스리거나, 더위가 당연한 것인 양 더위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덥다고 더위 자체에 집착하여 억지로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잊고 즐길 수 있도록 일상생활에 더욱 집중하거나, 더위가 열매를 제 모양대로 키우고 만들기 위해 반드시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깨닫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옛 사람들 여름 문화는 오늘 우리 실정보다 훨씬 질 높고 다양한 것 같다. 조상들은 눈 귀 코 혀 몸 등 ‘오감’으로 즐겼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한 더위를 피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더위를 적극적으로 맞이하고 즐기는 것이었다. 낙서법(樂暑法)이라고 할까.

눈으로 즐기는 법은 문에 대발이나 모시발을 쳐 놓고 밖을 내다보면서 발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기운을 눈으로 맞는 것이다. 예전 이 무렵 갖추고 사는 집 안방 앞문, 뒷문에는 세모시발 같은 죽렴이 쳐져 있곤 했다. 그러나 에어컨 덕택(?)에 문을 철저히 닫고 살게 되면서 가는 대발은 자취를 감췄다. 평상에서 별보며 하는 피서도 있다.

귀로 즐기는 법은 맑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 풍경소리, 대숲 바람소리, 솔바람 소리 등을 듣는 일이다. 그 소리들은 모두 ‘자연’의 소리이다. 하다못해 집 주위 물웅덩이에서 서로 화답하며 울어대는 맹꽁이 소리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찌는 더위의 정적을 깨는 훌륭한 피서감이었다.
입(먹을거리)으로 즐기는 법은 우물물에 담은 시원한 수박과 참외, 인동초로 만든 차나 더위지기로 만든 차가 있다.

몸으로 즐기는 법은 등목, 냉수에 발 담그는 일, 평상에 삼베이불 덮고 자기, 죽부인 안고 자기, 죽베개 베고 자기, 얼음덩어리를 손바닥 가운데 두거나 젖꼭지 위에 올려놓고 부채질하기 등이다.

코로 즐기는 법은 오이풀, 땅비싸리잎을 쳐서 나는 풀냄새, 쑥 등 모깃불 타는 냄새, 소나기 온 후 흙냄새, 해냄새(이불말린 후 뽀송뽀송한 냄새) 등이 있겠다.

한국일보에 기고한 이종묵 교수의 을 보면, “한여름 복더위에 작은 집에 거처하고 있더라도 눈을 감고 꼿꼿하게 앉아 있노라면 몸에 땀이 흐르지 않는 법이요, 솜옷조차 얼어터지는 엄동설한에 얼음판에 거처하더라도 목을 움츠리고 발을 싸고 있노라면 살갗이 터지지 않는다. 혹 스스로 인내하지 못하여 미친 듯이 날뛰면서, 여름철에는 반드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자를 찾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방을 찾아 의탁하려 들면 정자나 방도 쉽게 찾지 못하거니와 내 몸 또한 병이 들 것이다. 비유하자면 먼지를 쓸어버리는 것과 같다. 먼지를 쓸 때마다 먼지가 더욱 많이 생겨나니, 쓸지 않고 그냥 두면 먼지가 가라앉는 것보다 못하다. 우물을 치는 것에 비유하면 이렇다. 우물물을 흔들어 놓으면 물이 더욱 탁해지니, 차라리 흔들지 않고 있노라면 물이 절로 맑아지는 것만 못하다. 이 모두는 고요함의 힘이 움직임을 제압하는 것이다.” 이처럼 옛 어른들은 더위를 자연과 함께 물 흐르듯 거스르지 않고 그야말로 생태적으로 더위를 친구처럼 적극적으로 즐겁게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냉방기 등 더위자체를 무력화시키거나 큰 비용을 들여 피서를 함으로써 과다한 에너지 사용으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등 자연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을 불러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고 더위를 충분하게 받지 못함으로써 겨울철 감기에 쉽게 걸리고 건강에 좋지 않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더위를 몰아내고 이겨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위를 인정하고 더위를 존중할까 고민하며, 더위를 적극적으로 끓어 안고 더위와 친하게 생활해나가야 한다. 마음으로 한 여름에는 추운 겨울을 그리워하고, 추운 겨울은 더운 여름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1135년경 중국 선종에서 만든 선학 문답 공안집인 벽암록 동산무한서(洞山無寒暑)를 보면 “어떤 스님이 동산양개선사에게 물었다. 몹시 덥거나 추울 때 어떻게 해야 그런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나요? 선사는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럼 어떤 곳이 더위도 없고 추위도 없는 곳일까요? 더울 때 그대 자신이 더위가 되고, 추울 때는 또한 그대 자신이 추위가 되라. 더울 때 더위 속에 뛰어들고 추울 때 추위 속에 뛰어 들어라.” (以熱治熱)
 
 
*7월 인천녹색연합 소식지_초록통신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