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가 모르는 우리 동네, 매천과 계양천

2018년 8월 21일 | 성명서/보도자료, 하천

(10) 계양천과 나진포천 –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돌도끼, 돌화살촉, 돌칼, 돌창,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 석기류.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와 구순각목공열문토기(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 참외모양(과형) 주전자, 청자잔과 잔받침(잔탁), 청자접시, 푼주(아가리가 넓고 밑은 좁은 너부죽한 사기그릇)’

인천 서구 원당동에는 2008년 개관한 검단선사박물관이 있다. 1999년 인천 서북부지역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업지역에서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유물의 처리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지역사 이해 및 해당 유적 보존 차원에서 원당지구 내에 선사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다는 것이 박물관 측 설명이다. 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는 인천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시대별, 유적지별로 전시되고 청동기시대 집터, 검단의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널무덤들도 볼 수 있다. 돌널무덤(石棺墓, 석관묘)은 평평한 돌로 상자 모양으로 네 벽을 쌓아 관으로 사용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최근 문화재청은 검단신도시 사업부지에서 청동기시대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적과 유물이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신석기와 청동기시대 주거지, 삼국시대 나무널무덤(목관묘),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나무널무덤들 수백기와 다수 청자 그릇들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산자분수(山自分水) 개념에 따라 산줄기와 물줄기를 이해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남쪽으로 내려오다 속리산에 이르러 서북방향으로 한남금북정맥이라는 2차 산줄기를 뻗었다. 한남금북정맥은 안성의 칠현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다시 나뉘고 한강의 남쪽을 담당하는 한남정맥은 용인 석성산, 수원 광교산, 안양·시흥·군포 수리산을 지난 후 소래산, 만월산, 원적산, 철마산, 계양산으로 인천을 관통한다. 계양산을 지난 한남정맥은 가현산을 지나 김포의 문수산에서 마침내 한강과 임진강을 만나 멈춘다. 계양산을 지나 가현산에 이르는 동안 한남정맥은 북동쪽으로 귤현천 계양천 나진포천 대곡천을, 남서쪽으로는 시천천 검단천 대포천을 품어 흘린다. 지금은 아라뱃길로 물길이 짤렸지만 계양천의 발원지는 원래 계양산 북쪽 기슭이었다. 계양산 정상에 서면 북쪽 산밑으로 아라뱃길이, 그 뒤로 누렇게 속살을 드러낸 검단신도시 건설현장이 보인다. 빼곡하게 솟은 김포신도시의 아파트와 한강 건너 일산의 아파트들도 지척이다.

“매천의 발원지를 보전해 주세요”, “검단신도시가 진정으로 친환경생태도시를 표방한다면 한남정맥에서 갈라져 만수산, 황화산, 금정산으로 이어진 산줄기들과 이들 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들을 보전해야 합니다”

인천도시공사 회의실에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검단신도시개발에 환경관련 자문을 받기 위한 마련된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 검단 주민들로 구성된 지역환경단체인 ‘만황금환경모임’의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만황금은 만수산, 황화산, 금정산 등 검단신도시 내에 있는 산이름의 각각 머리글자를 만들었단다. 이들 산에서는 인천 서구가 지정관리하는 소하천인 매천, 신기천, 갈산천, 목지천이 발원하는데 택지조성을 위한 복토(흙쌓기)와 절토(흙깎기)공사가 한창이다. 야트막한 산들은 깎여 구릉지가 되었고 물길은 쓸려내려온 흙더미에 위태롭다. 매천의 발원지 금정산은 터널공사 중이다. 계양천이 신기천과 만나는 곳에서는 인천영어마을이 눈 앞이다. 원래 인천영어마을의 정문은 반대편이었는데 신도시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정문은 닫히고 후문이 출입구가 되었다. 그곳에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지금은 검단신도시 어디서도 볼 수 있는, 1647년 4월 심었다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보호수’라 산이 깎이고 나무들이 뽑혀나가는 천지개벽에도 용케 살아남았다. 만수산과 황화산, 금정산에서 시작된 갈산천, 목지천은 나진포천으로, 매천과 신기천은 계양천으로, 계양천과 나진포천은 김포의 걸포중앙공원에서 만나 한강으로 흘러든다. 그 옛날 검단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은 계양산, 만수산, 황화산, 금정산에 깃들고 매천, 신기천, 계양천, 한강에 기대어 살았을 것이다.


인천시와 인천도시공사는 당하,원당,마전,불로동 일대 1천만㎢이 넘는 검단신도시를 건설하면서 개발의 필요성으로 △수도권의 균형발전과 주택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친환경 자족도시 건설, △ 영종·청라지구, 김포신도시 등 검단 주변의 급격한 도시공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계획도시를 건설하여 수도권 서북부 거점벨트 형성, △ 서북부지역의 부도심으로 행정, 문화, 교육의 중심공간 창출을 이야기한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 동네 이야기, ‘그래서, 검단’. 지금 검단선사박물관에서는 개관 1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검단의 여러 동네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마을제사인 동제를 지냈어요. 동제는 보통 산이나 동네의 큰 나무 앞에서 치렀어요’. 백 년 후, 천 년 후 검단은 어떤 모습일까? 후손들은 어떤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게 될까?


2018년 8월 21일자 인천in에 게재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