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나는 인천섬순례 둘째날

2009년 11월 3일 | 섬•해양

신도 마을회관에서의 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여기 저기 조금씩 쑤시는 몸을 일으켜 침낭에서 빠져나왔다. 아침식사로는 어제저녁 먹고 남았던 떡볶이와 미역국을 한 번 더 조리해 먹었는데, 어설픈 맛이나마 직접 조리한 정성 탓인지 훌륭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시도를 지나 모도에 있는 배미꾸미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기덕 감독의 ‘시간’ 영화를 찍기도 했다는데, 주로 성을 모티브로 한 조각들이 해변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적인 형태들을 분리시키고, 합치고, 비트는 식으로 표현되었거나 아주 노골적으로 묘사된 모습들이 많아서 나의 눈엔 다소 괴기스러워 보였다.

 

조각공원을 떠나 두번째로 도착한 곳은 드라마 세트장 이었다. 이미 드라마가 끝난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열심히 시청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도착하자마자 풀하우스의 외관부터 살피기 시작했는데, 몇 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일까. 지저분한 벽면부터 시작해서 비와 송혜교의 모형 판까지 전체적으로 “낡았다” 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입장료가 있었던 탓에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주로 해변가를 거닐며 바다 구경을 많이 했는데 탁 트인 바다를 앞에 둔 풀하우스를 보니 드라마 속 송혜교가 작가였다는 사실이 떠오름과 동시에, 예술작업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트장을 뒤로하고 신도 선착장으로 돌아와 장봉도행 배를 탔다. 편안히 앉아가는 배에서의 시간은 자전거 여행 중간 중간 나오는 간식만큼이나 나에게는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배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12시에 장봉도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네가지의 미션을 받았다. 장봉2리 마을회관에 1시 반까지 모둠별로 네 가지 미션을 수행하고 도착해야 했는데 네 가지 미션은,

1.인어상의 비밀찾기.
2.장봉도의 천연기념물, 특산물 알아내기.
3.장봉도의 청년층/중장년층의 비율 알아내기.
4.주민들의 고충듣기.

이 네가지 였다.

각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사진으로 증거물을 남겨야 했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 이긴 팀부터 5분 간격으로 출발했다. 내가 속한 3팀은 첫 번째로 출발했는데 선착장 바로 앞에서 우체부 일을 하시는 아저씨께 인어상의 위치를 듣고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장봉도의 한 어부가 어느날 물고기를 잡다가 인어를 낚게 되었는데 이 인어가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그냥 놓아주었더니 그 후로 물고기를 훨씬 많이 잡게 되었다.” 라는, 인어의 보은과 관련된 내용이 조각상 앞에 적혀있었다. 첫번째 미션을 수행하고 나머지 미션들은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에 수행하기로 했다. 마을회관은 선착장에서 인어상 반대편 길로 가야했는데 반대편 길로 향하는 길에 되돌아오는 4팀을 만났다. 알고 보니 4팀은 인어상의 위치를 모른 채로 반대편으로 먼저 향했다고 했다. 그 뒤로 부동산 주민분께 미션을 여쭙고 있는 2팀도 만났는데, 두 팀보다 먼저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팀이, 이러다 1등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 좋은 추측도 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더니, 미션수행이라는 산 뒤에는 마을회관까지의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회관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았다. 언덕하나를 오르고, 이제 내리막길인가 기대하면 여지없이 또 오르막길이 나왔다. 어느새 뒤쪽에서 따라붙은 2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힘에 부친 우리팀은 2팀의 추월을 지켜보며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내리막길을 내려오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장봉도 아주머니들께 장봉도에서 지내는 일의 고충을 여쭈었다. 돌아왔던 대답은 무엇보다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을 위한 학교에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 두 학년씩 묶어서 수업을 하고 있었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배를 타고 나가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다.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나의 학창시절 교육환경들이 어느 곳에선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마을회관 부근에서는 쉬고 계시는 할머니 한분의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는데 잠시나마 해보니 만만치 않아서, “역시 농사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회관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막머리에 가서 등산을 했는데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나니 탁 트인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주위를 두르고 있는 모래갯벌(풀등)의 모습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모래채취를 지나치게 많이 해 지역 어민분들에 의해 2003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많은 모래채취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과 지역 어민분들이 받는 피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경제발전의 이유로 진행되고 있는 많은 개발들이 이런 부작용들을 얼마나 고려하고 진행되었는가 문득 궁금해 졌다. 알면서도 괘념치 않았을까. 빠르게 진행된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그동안 사람들의 희생 못지않게 자연환경의 희생도 엄청났을 거란생각을 하니, 앞으로 남은 발전 안에서는 조화의 방향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막머리 등산 뒤에는 마을회관에서 옷을 두툼히 챙겨 입고 한들해변으로 갔다. 처음에는 갯벌에서 망둥어 낚시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밀물이 밀려들어 낚시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신 한들해변에서의 시간은 진흙놀이 시간으로 변했다. 다들 갯벌진흙을 손에 쥐고 던지고 묻히고 하면서 잊지 못할 갯벌놀이를 즐겼는데 몇 사람들은 아예 갯벌에서 온몸을 뒹구는 바람에 한들해변 샤워장에서 덜덜 떨며 온몸을 씻어야 했다.


 

마을회관에서의 저녁식사 뒤에 장봉도 문화해설사 할아버지께서 숙소를 방문해 주셨다. 한팀씩 돌아가며 낮에 받은 미션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모든 팀의 발표 후에 총평이 뒤따랐다. 문화해설사분의 설명으로 알게 된 장봉도의 천연기념물은 노랑부리백로였고, 특산물은 포도, 호박고구마, 대합조개 등이었다. 그리고 중장년층이 7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역시 농어촌의 고령화는 어디든 심각하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문화해설사분이 농어촌의 현실에 대해 비관적이고, 무기력하다거나 한 것 전혀 없이 농.어촌의 미래에 대해 진취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던 모습이었다. 간략히는 관광산업에 관한 것이었는데, 농업과 어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의견에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나름의 대안으로 농어촌의 미래를 모색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젊은이로써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문화해설사 분이 돌아가신 뒤에는 섬순례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다 같이 소감들을 말하고, 서로의 마니또를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져온 선물을 교환하고 둘러앉아 서로에 대해 궁금했던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셋째 날의 밤이 깊어갔다.

                                                                                                      – 3모둠 진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