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한 인천의 섬

2015년 10월 28일 | 성명서/보도자료

                                                  무궁한 인천의 섬 

                                                                                장정구 /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다. 전국의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무궁화 중 천연기념물은 딱 두 그루뿐이다. 그 중 한 그루가 인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천시민은 거의 없다.

옹진군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가 바로 천연기념물 제521호다. 백령도 중화동교회 앞 무궁화는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의 무궁화 중에서 가장 크며 재래종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이다. 피고 지고 또 피는 무궁화를 ‘무궁화(無窮花)’라 표현한 것은 동국이상국집이 처음이다. 동국이상국집은 고려무신정권시절 대표적인 문장가로 계양도호부사를 지냈고 강화에 잠들어 있는 이규보의 시문집이다. 나라꽃 무궁화가 우리 인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고령인 인천역의 라일락(우리말 수수꽃다리)이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1년이 넘도록 아무도 고사한 것을 몰랐고 인천역을 수없이 오간 인천시민들은 그 수수꽃다리가 우리나라 최고령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1899년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인 경인선 철도의 출발지가 인천역이다. 언제 심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인천역을 통해 수많은 서양문물이 전해졌음을 고려하면 인천역 수수꽃다리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조경학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고하신 우리나라 조림학계를 대표했던 한 노학자는 매년 꽃필 무렵이면 인천역을 찾아 수수꽃다리 향기를 맡으며 차 한잔했다고 전한다.

인천시는 2015년을 서해5도 방문의 해로 설정하고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옹진군은 1박 이상 체류하는 관광객들에게 여객선 배삯의 50%를 지원해주고 있다. 또 잠재자원을 발굴하여 관광을 통해 섬지역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일명 ‘인천 섬 프로젝트’ 사업도 진행 중이다. 무인도인 사렴도는 허브가든, 조각공원 등 유원지 개발이, 치유의 섬을 표방한 승봉도는 연꽃체험공원과 캠핑장이 조성될 예정이다. 덕적도에는 마리나 거점항만 조성사업에 수백억원이 투입된다는 소식이다. 인천앞바다와 섬에 격변의 풍랑이 일고 있다.

현재 인천 앞바다에는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가 지정하고 지원하는 ‘찾아가고 싶은 섬, 평화생태마을’이 5곳이다.  근대문화공간 교동도, 바다생태마을 이작도, 저어새생태마을 볼음도, 나그네의 섬 덕적도, 이색체험마을 장봉도. 이 섬들은 남북분단과 지리적 여건으로 소외된 도서지역의 주민복리증진과 지역발전을 위해 2011년부터 ‘명품’ 섬 만들기가 한창이다. 섬마다 25억원의 넘는 예산이 지원되었다. 그렇게 5년 동안 ‘만든’ 명품 섬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모든 섬에는 나무데크로 포장된 섬둘레길이 조성되었고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널찍한 탐방로가 생겼다. 같은 모양의 전망대, 쉼터가 만들어졌다. 모든 섬이 똑같다. 섬마다의 특색을 살린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업계획서와 보도자료에는 ‘인천앞바다의 자연생태, 역사문화 강점을 살려 다양한 소득원을 발굴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며 거창하게 적혀있다. 그러나 계획서 상의 ‘정해진’ 기간 내에 ‘책정된’ 세금을 ‘충실하게’ 써버린 또 그런 사업들이 되어버렸다. 교동도만해도 연산군유배지, 교동읍성과 향교, 드넓은 논만 있는 게 아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백제 아신왕의 격전지인 관미성으로 추정되는 화개산성이 있고 남산포에는 삼도수군통어영의 계류석이 남아 있다. 올 가뭄 고구저수지 바닥의 토탄(土炭)층이 드러났고 동진나루 앞 응암에서는 아기 저어새가 태어났고 천연기념물급 노거수들이 수 백 년 째 각 마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덕적도와 장봉도, 이작도, 볼음도는 어떨까?

민선6기 인천시행정부는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역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인천의 섬을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인천앞바다와 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황해의 섬은 우리의 등대이다. 황해의 섬이 살아있는 때, 사람들은 사방팔방 뱃길로 이어졌다. 아라비아와 류큐, 상하이와 나가사키가 황해의 섬과 하나가 되었다. 뱃길로 이어진 세계와의 교류는 황해에서 찬란히 빛났다.
 – (사)지속가능한섬 발기취지문 중에서 

* 2015년 10월 28일자 인천일보 환경의창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