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쉰 다섯번째 우보호시 – 부평과 캠프마켓을 따라

2025년 3월 31일 | 우보호시

인천녹색연합 회원소모임 ‘우보호시’는 소의 걸음과 호랑이의 눈으로 현장 곳곳을 걷는 모임입니다. 지난 3월 22일(토) 쉰 다섯번째 우보호시는 ‘부평과 캠프마켓’을 따라 걸었습니다. 인천녹색연합 부설 생태역사공간연구소 김현석 대표의 안내로 부개역을 시작으로 철길, 철도관사, 다다구미, 캠프마켓을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본 내용을 김가영(땅콩) 회원이 후기로 남겼습니다. 돌아본 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 글인데, 이 홈페이지에는 감상만 남깁니다.


우보호시는 익숙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학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전에도, 그전에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 익숙하지 않은 길, 정돈되지 않아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험난한 즐거움을 가진 길을 따라 걸었던 것 같습니다. 미끄럼틀 같은 비탈길을 타기도 하며 요리조리 걸어 다닙니다. 🏃‍♀️인천에 살면서 부평을 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길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가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길은 비탈길이 아니고 좁은 길과 자갈길도 아닙니다. 부평의 화려한 지하상가, 부평 문화의 거리, 저도 그런 눈에 띄는 곳들로 향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익숙하지 않은 길의 미학을 아는 우보호시와 함께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부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부평의 화려한 지하상가와 시장, 문화의 거리가 어떤 이유로 생겨났고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골목과 주택단지를 따라 살펴봤습니다.

과거 흔적과 역사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발견해야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치가 아무리 선명하게 빛나더라도 흙을 파헤쳐 숨어있는 사실을 들여다볼 마음이 없다면 그 소중함을 알 수 없습니다. 좁고 험난한 길처럼 ‘조병창’과 ‘미군 부대’는 명칭부터 낯설고 고단하게 들립니다. 내가 사는 집값이 가장 큰 문제인 당장의 삶은 마치, 누구나 주시하고 기꺼이 가려고 하는 넓고 화려한 길 같습니다. 내 주변 지역의 옛날이 어땠는지 귀 기울이고 파헤치기엔 내 집값은 높아져야만 하고, 많은 이들이 가는 길을 향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좁은 길에는 험난한 즐거움의 미학이 있습니다. 겉에서 봤을 땐 언뜻 고생스러워도 보이지만 발을 내디디면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작고 좁은 길을 거닐면 그만큼 발에 치이고 눈에 치이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조병창을 알고, 미군 부대를 알게 된 것처럼 사소하게 지나쳐갔던 것 하나하나에 역사가 새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병창이 뭐지?” “미군 부대가 뭐지?” “한 번 내가 사는 곳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 번 조사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볼까” 하며 좁은 길로 가보려는 걸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캠프마켓까지 모두 둘러보고 나서 하늘다람쥐님께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이 시급한가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철거든 개발이든 급하게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셨습니다. 오염을 먼저 해결해 놓고 부지를 개방해 놓은 뒤, 사람들이 공간을 향유하는 생활 모습을 보며 그에 맞는 적절한 장소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유물과 유적의 철거는 신중해야 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어떤 역사가 숨겨져 있는지 그 가치가 무엇일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험난한 즐거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 즐거움을 오늘 우보호시를 함께 걸은 분들처럼 많은 분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변에 방어를 위한 철망을 펼쳐놓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삶을 지키기 위해서도 분명 필요하며 역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철망 사이에 서로의 손이 드나들고 눈을 맞출만한 공간만 있어도 우리는 전보다 빈틈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빈틈으로 살아내기 급급한 삶 속에서도 내가 사는 지역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고, 복원하고 지켜야 하는 입장에 한 번 귀 기울여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익숙하지 않은 길에 가보는 용기와 관심으로 수많은 가치와 가슴 아파 지켜야만 하는 역사를 만날 수 있음을 느끼며 다시 한번 그 즐거움을 알아갑니다.

/ 인천녹색연합 회원 김가영(땅콩)